황재형 개인전: 십만 개의 머리카락
Hwang Jai-Hyoung: One Thousand Hundred Hairs


2017. 12.14 ~ 2018. 1. 28
가나아트센터


황재형의 탐험 ‘십만 개의 머리카락’
윤범모 (동국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수묵화 전시장 같다. 그러나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 사실적인 표현 속의 인물과 자연, 예사스럽지 않다. 뭔가 빨려들게 하는 마력, 그게 뭘까. 작품 앞으로 가까이 가 본다. 경악! 한마디로 경악, 그 자체이다. 캔버스 위에 펼쳐진 그림은 수묵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화도 아니다. 머리카락! 머리카락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이는 정말 놀라운 일이지 않을 수 없다. ‹십만 개의 머리카락›, 바로 황재형 신작 개인전의 이름이다. 십만 개의 머리카락이라니, 이 또한 놀라움의 현장이다. 화가는 기왕의 유화물감을 내려놓고 새로운 표현재료와 씨름했다. 표현재료의 확장이다.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캔버스 위에 부착시키면서 형상을 일구어낸 역량과 의욕은 상찬의 대상이다. 현대미술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표현매체의 무한 확대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래도 그렇지, 물감 대신 머리카락을 선택했다! 세계 미술사에서 이런 선례가 있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황재형의 탐험, 놀라움의 현장이다.

황재형은 자신의 거주지인 태백의 미용실을 순례하면서 머리카락을 모았다. 그리고 커다란 캔버스 위에 머리카락을 펼쳐놓고 형상을 만들고 접착제로 고착시켰다. 이 과정에서 손은 망가졌고, 또 눈의 실핏줄이 터져 고통을 주었다. 신체를 희생하는 형식의 작업이다. 집요할 정도의 집중력 아래 섬세하고도 노동 강도가 높은 작업이다. 한마디로 유화작업보다 최소 3배 이상 힘든 작업이다. 달리 표현한다면, 유화 3점을 완성할 시간에 머리카락 그림 1점을 완성할 수 있다. 붓질 대신 머리카락을 선택한 멍에이다. […]

한 줌의 머리카락은 지배와 예속의 상징이면서, 갈등의 징표였다. 황재형은 이런 이야기를 가슴에 새기면서, 머리카락이라는 재료를 주목했다. 머리카락은 바로 머리를 감싸고 있는 것, 즉 인체 가운데 가장 높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머리는 희로애락의 모든 과정을 관장하는 곳, 즉 영혼이 들어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머리는 인간 이상의 현존체이다. 인간의 꿈은 머리를 통하여 구현되었다. 그래서 머리카락은 힘의 상징이기도 했다. 삼손과 데릴라의 이야기가 전하듯 머리카락은 힘의 상징이었다. 거기다 머리카락은 하나의 분신 역할을 하고, 또 사랑의 징표로 활용되기도 했다. 연인에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내는 행위의 의미를 염두에 둘 수 있다. 황재형은 ‘광부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대학 졸업 이후 광산촌에서 살면서, 자신이 직접 광부노릇을 경험했고, 또 폐광이후에도 광산촌의 자연과 인물을 계속 그려 왔기 때문이다. 황재형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광부들의 모습을 캔버스에 담으면서 그들에 대해 미안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노동자들과 함께 하면서, 저항도 하고, 또 그들을 작품에 담았지만, 양심의 가책은 버릴 수 없었단다. 이는 주체와 객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번에 머리카락 작업으로 노동자의 머리카락으로 노동자의 모습을 작품에 담으니 어느 정도 위로가 되었단다. 즉 노동자의 꿈이 담겨 있는 머리카락으로 그들의 꿈을 작품에 담으니 힘이 더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머리카락으로 광부를 그리니 힘이 더 강력해졌다는 것. 작품 주제 이외 머리카락이라는 재료 자체가 힘을 이끄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머리카락은 죽은 것이지만 죽지 않고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 즉 세포가 살아 있고, 변치 않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황재형은 머리카락 자체의 힘을 믿고, 색채를 버리면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 붓보다 머리카락은 그 자체가 자율적인 표현과 힘을 주었다. […]

황재형의 첫 번째 머리카락 작품은 ‹볕바라기›(2016)였다. 내용은 갱도 앞에서 쉬고 있는 광부들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사실 광부의 삶은 ‘막장 인생’이라는 말처럼 처절하다. 예측할 수 없는 사고를 안고 살기 때문이다. 갱 안에서 휘파람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이는 갱목이 뒤틀릴 때 나는 소리이다. 갱이 무너지기 때문에 빨리 피신해야 살아난다. 그런 갱 안에서 광부는 일 하고, 쉬고, 낮잠도 잔다. 그들은 말한다. 갱 안이 마치 엄마의 자궁 안처럼 편하다고. 광부라는 존재가 헝클어진 머리카락처럼 느껴지게도 한다. 노사관계 역시 그렇다. 허파가 돌처럼 굳어 죽는 규폐증을 안고 일해야 하는 광부들, 이들의 모습을 머리카락 작업에 담았다. 황재형의 머리카락 첫 번째 시도이다. 황재형은 자신의 유화작업처럼 머리카락으로 광산촌의 사람들을 화면에 담았다. 검은 동네의 풍경을 역시 검은 색 머리카락으로 표현하니 그 울림이 남달랐다. 기왕에 유화 대작으로 표현했던 광산촌의 인물을 머리카락으로 다시 시도하기도 했다. 광부초상인 ‹드러난 얼굴›의 경우, 유화와 머리카락의 표현상 특이점을 헤아리게 한다. 한마디로 머리카락으로 어떻게 한 인물의 외형적 특징과 내면세계까지 핍진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드러난 얼굴›의 광부는 시대적 억압, 그리고 자본과 조직에 예속된 삶의 얼굴을 머리카락으로 그 정서를 전달하려 시도한 작품이다. 이런 작품은 선탄부를 그린 ‹세 겹 하늘› 등 몇몇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 흑연작품 ‹알혼섬›은 바이칼 호수의 섬을 그린 작품이다. 검은 색의 울림이 예사스럽지 않은 작품이다. 바이칼 호수는 2천5백만년 전 대륙이 나누어지기 전의 호수로 알려져 있다. 원시생명체의 보고로 알려졌듯 그곳 지층은 원시성을 지니고 있다. 시베리아의 진주라고 불릴 만하다. 바이칼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되었고, 깨끗하고, 깊고, 찬 물의 호수이다. 이런 바이칼과 우리 민족의 시원과 연결된다는 사실이 주목하게 한다. 황재형은 바이칼호수의 침묵을 물감으로 해결할 수 없어 흑연을 사용했다. 색은 인간의 감정을 드러내는 만큼 인위적인 특성이 있다. 바이칼의 침묵을 그리고자 화가 자신의 기질을 주저앉혀야 했다. 그래서 흑연을 사용하여 다시 반사시키는 효과를 살리고자 했다. 캔버스 바탕을 까맣게 하고 흑연을 칠하면 빛이 반사되고, 거기에 침묵이 스민다. ‹진여(眞如)›는 2-3시경의 새벽 물결을 그린 것이다. 그 시간의 새벽 물이 가장 맑으면서 생명수가 된다고 했다. 있는 그대로 그리기. 화가는 화가의 분별심을 삭제하고, 그러니까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리려 했다. 까망 속에 담긴 물의 침묵이 재조명되고 있다. 있는 그대로, 즉 참다운 진여를 표현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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