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Interview - 하이경 작가
익숙함의 위로
굵은 빗줄기가 아스팔트 바닥으로 세차게 쏟아져 내린다.
보아도 알고, 들어도 알고…잠 결에 물 길을 내닫는 차 소리가 좋다.
빽빽한 건물 숲에 살고 있어도 구석구석 젖어 드는 비가 고맙다.
가로수가 늘어 선 거리, 그림자가 드리운 보도, 비 오는 아스팔트 거리 등 모든 장면은
나를 포함한 현대인이 살아가는 익숙한 풍경이며, 내 작업의 주요 소재이기도 하다.
그 날이 그 날인 일상들.
하고 싶은 일 보다는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날들.
반복되는 일상을 떨쳐내려 어디론가 훅~떠나 갔다가도, 돌아오면 변함없이 기다리는 지루하지만
익숙한 현실에 오히려 안도하고 위로 받는 나를 본다.
갈증은 물리적 제약으로 인함이 아니다.
이러한 자각은 지금껏 살아오며 무던히도 애써오던 것들에 대해, 조금은 힘을 빼고 관조의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했다.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듯, 또는 버티컬 친 창을 통해 내다 보듯, 대상과 나의 직접적 거리를 일정부분 벌려 놓는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의 풍경들에 특정한 의미를 담지 않고, 담담히 성실하게 그려내는 가운데 떠오르는 추억과 생각의 고리들을-
이미지와는 전혀 상반되기도 하는- 붙잡아 작업하는 내내 그 상황 속에 나를 들어가게 한다. 흔한 골목이 ‘그 어느 때의 나의 골목’이 된다.
비슷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엇비슷한 사람들일지라도 각자의 무대에서는 그가 주인공이다.
이 거리를 보며 다들 무슨 생각을 할까? 정작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그렸는가?
매우 흔한 풍경인 동시에, 매우 사적인 풍경이 되는 것이다.
완성하는 순간은 물론, 일련의 작업 과정 모두가 스스로의 위로와 해소의 창구이며, 내 삶의 구도(求道)의 한 방식이다.
고요하되 일렁일 것.
다르되 같을 것.
맺되 풀 것.
(하이경 작가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