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큐레이터를 만나다<연재 1>

= 경기도미술관 [박본수] 큐레이터 =



 

 


큐레이터로서 간단한 이력 및 소개 부탁

 

저의 큐레이터 이력은 크게 삼성문화재단과 경기문화재단 시절로 양분됩니다. 삼성문화재단에서 8, 그리고 경기문화재단에서 10년 넘게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 중간에 낀 6년간은 석사학위논문을 위한 공부의 시간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에서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했던 시기입니다.

홍익대학교 예술학과에 들어가 관련 공부를 했기에 큐레이터가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홍익대 미대에서 미술이론 전공 학과를 만들고 학생을 뽑기 시작한 것이 1987년이었습니다. 저는 19882기로 입학했습니다. 그리고는 대학교 4학년 2학기 시작될 무렵에 조기 취업하여 사회 초년생으로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19939월 삼성미술관 리움의 전신인 용인 호암미술관(삼성문화재단 산하)에 입사하여 64개월 동안 소장품관리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말로만 듣고 책으로만 보았던 동서고금의 미술품을 직접 수장고에 보관하고 기록하는 업무를 했습니다. 당시엔 작품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레지스트라(Registrar) 직무에 나름대로 소명의식을 갖고 일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수많은 미술품을 대하다 보니 미술사 공부를 해보고 싶어서 1997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입학합니다. 석사과정 수료를 마치고 나서 200011일자로 호암갤러리를 운영하던 삼성미술관 학예연구실로 발령을 받아 전시기획 업무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 무렵 저의 걱정과 고민은 석사학위 논문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홍익대 대학원 학칙상 6(12학기) 이내에 졸업해야 했습니다. 고심 끝에 석사학위 졸업과 한국근대미술을 더 심도 있게 공부해보고자 하는 의욕을 갖고 20019월 삼성문화재단을 자진 퇴사하였습니다. 8년 동안 일했던 직장을 그만 두게 됩니다.

그 이후 몇 달 동안을 홍익대학교 도서관과 집을 오가며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2002년 말 석사학위논문이 통과되었습니다. 제목은 조선후기 십장생도 연구입니다. 그 무렵 대학원 선배님들의 주선으로 용산 신축 건물로 이전 준비 중인 국립중앙박물관의 정보화사업단에 들어가 일을 하다가 2004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에 계약직 공무원으로 입사하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기획업무 부서에서 4년간 일을 합니다. 이 기간 중에 꽤 고생을 많이 했다 싶고, 반면에 문화인류학이나 민속학과 같은 인문학 분야와 함께 다양한 예술 분야 전문가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지적 관심사가 조금은 넓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요약해보면 2002년 하반기에서 2008년 상반기까지 6년여의 시간은 한국미술사에 관한 천착의 시간이자, 미술사로부터 시작하여 좀더 넓은 인문학의 세계로 관심사가 넓혀지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086월부터 지금까지 10여년 동안을 경기문화재단 산하의 경기도박물관 학예팀, 경기문화재단 정책사업팀, 경기도미술관 학예팀에 근무하면서 자칭 경기도를 테마로 한 큐레이터이자 고미술과 근현대미술을 연결하고자 하는 전시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 큐레이터로서 기획한 전시는 어떤 것이 있고, 이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는?

 

제가 주무 역할을 하여 기획을 했거나 저의 역할이 컸던 전시를 연대 순으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략 11개 정도로 정리가 됩니다. (역할이 적은 것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근대 화단의 귀재 이인성(2000, 삼성미술관), 원경환흙의 인상(2001, 로댕갤러리), 십장생 특별전(2003, 궁중유물전시관), 임진강(2009, 경기도박물관), 비망록 1950(2010, 경기도박물관), 책거리 특별전(2012, 경기도박물관), 전통 목가구 특별전(2012, 경기도박물관), 경기 팔경과 구곡(2015, 경기도미술관), 기전본색-거장의 예술을 찾아서(2016, 경기도미술관), 크래프트 클라이맥스(2017, 경기도미술관), 코리안 디아스포라-이산을 넘어(2018, 경기도미술관)

11개의 전시 제목을 얼핏 보아도 다루는 시대와 지역, 분야 등에서 상당히 다양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를 꼽으라고 한다면, 2009년의 임진강, 2012년의 책거리 특별전, 2017년의 기전본색-거장의 예술을 찾아서입니다.

임진강전시를 통해 염원해 마지않던 큐레이터의 세계로 복귀했습니다. 양희은의 노래 임진강을 수도 없이 듣고 되뇌며 전시 준비를 하는 동안 북녘에서 발원하여 서해로 흘러가는 한 많은 임진강의 사연과 인문지리학적인 서사를 전시로 엮어보고자 했습니다. 경기도가 무척이나 넓고, 개성과 한양이라는 고려-조선시대의 수도를 낀,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기회였습니다. 책거리 특별전은 궁중장식화와 민화에 대한 학문적 관심과 함께 당시 막 가입하여 활동을 시작한 한국민화학회 소속 선배 학자 분들과의 교류를 바탕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이 전시는 고미술 작품과 함께 현대미술작품을 연계한 기획으로 신선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 전시 도록이 인기가 있어 경기도박물관의 기획전 역사상 완전 판매(Sold Out)’된 첫 사례였다고도 합니다. 안산에 위치한 경기도미술관에서 일한지 2년 차인 2016년 경기도 예술계의 거장을 찾아 발로 뛰었습니다. 자문회의를 거쳐 선정된 열 명의 작가의 작업실을 각각 두 세 차례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했습니다. 파주, 포천, 동두천, 양평, 광주, 안양, 강화도, 대부도에 둥지를 틀고 작업하시는 노장들의 삶과 예술의 세계를 더듬어 보면서, 현장의 중요성과 함께 큐레이터라는 직업의 묘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여 작품을 보고 인터뷰를 하다보면 인간적 체취를 느낄 수 있고, 당사자들만이 들려줄 수 있는 내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책과 도판에서 볼 수 없는 생생한 날 것으로 각인되면서 큰 힘을 발휘합니다. 큐레이터가 작가를 만나기도 하지만, 작가 또한 큐레이터를 만나면서 전시의 주체로 관람객과 만나게 됩니다. 전시기획의 매개자, 시각예술을 전시의 주제와 개념에 맞게 선별하여 소개하는 큐레이터의 역할에 대해 뿌듯함과 보람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3. 최근 디아스포라 전시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데, 간략하게 전시소개를 부탁

 

코리안 디아스포라, 이산을 넘어전시는 경기도라는 이름을 쓴지 1천년이 된 것을 기념하여 개최하는 전시입니다. 경기도미술관 2년 전부터 초기 기획을 했고, 본격적으로는 1년의 준비 기간을 가졌습니다. 생각해보면 한반도에 사는 한민족의 역사에서 타율적(他律的) 이주(移住)’를 겪게 된 것은 19세기 중반에서부터 일제강점기 때까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민족의 혈통을 가진 재외 한인 동포들, 그 중에서도 아시아 5개국, 중국 일본 러시아(사할린)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작가 25인을 초청하였습니다. 주로 회화 작품과 일부 사진과 영상 작품 등 모두 114점을 전시하였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코리안 디아스포라 작가들의 전시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한 전시를 통해 중국 용정 출신의 한락연이나, 러시아의 변월룡, 우즈베키스탄의 신순남과 박성룡 작가 등이 소개되어 꽤 유명해지기도 했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앞선 코리안 디아스포라 관련 전시들을 의식하면서 무언가 차별화된 포인트를 마련하고자 의도했습니다. 그래서 기왕에 알려진 유명한 작고 작가나 원로작가들을 초대하는 대신, 현장 조사를 통해 알게 된 3~4세대 젊은 코리안 디아스포라 작가들을 한국에 소개하고자 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국경을 경계로 하여 어느 나라에 어떠어떠한 작가가 있다는 식의 나열형 소개를 지양하고, 코리안 디아스포라 작가들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주제를 분석했습니다. 그랬더니 대략 다음 네 가지의 주제의식이 드러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산의 역사와 기억 뿌리의식과 정체성 탐구 또 다른 고향에의 적응과 정착 조국에의 연결 등 네 가지의 카테고리로 작품을 나누고 그렇게 작품을 배열했습니다. 그리고 전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2015년부터 중앙아시아 지역 동포들 사이에서 불려지는 고려아리랑영상을 틀었습니다.

올해 가을 광주와 부산, 창원 등지에서 비엔날레가 열리는 바람에 중앙 언론에 이 전시가 부각되어 소개되지는 못했습니다. 지방에서 열리는 미술 축제에 오가느라 기자들이 너무 바빴고, 안산에 위치한 경기도미술관에 이르는 교통편이 좋지를 않았습니다. 하지만 16천 명에 가까운 관람객이 이 전시를 보러 경기도미술관에 다녀갔고, 전시를 보신 분들은 오래간만에 회화 중심의, 해외동포의 사연이 절절하게 담겨 진심이 전해지는 작품들을 보고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4. 1년 동안 전시준비를 위해 일본, 중국, 러시아(사할린),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을 다니면 서 현장에서 만난 이방인으로서 사는 한국인인 이 분들을 만나면서 어떤 점을 느끼셨는지?

 

201712월 중국 연변을 필두로 해서 20183월부터 7월까지 일본(오사카, 교토, 도쿄), 중국(북경, 하얼빈, 심양, 단동), 러시아(사할린), 우즈베키스탄(타슈켄트), 카자흐스탄(알마티) 까지 쉴 새 없이 해외조사를 다녔습니다. 이 때 만나본 한인 동포 작가들은 조국인 한국과 연결되고 싶어 합니다. 그들의 태생적 근원이 한반도라는 것을 알고 있고,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서 늘 생각을 합니다. 현지에서 만난 동포 작가들 중에서 비교적 한국말을 잘 하는 경우는 중국 조선족과 재일교포 정도입니다. 조선족 작가의 경우에도 2세대의 경우는 말을 잘 하지만, 3~4세대로 가면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합니다. 러시아어권에 속하는 사할린과 중앙아시아 작가들은 한국말을 살짝 알아듣는 정도입니다. 반면에 음식의 경우는 꽤 전승의 농도가 짙은 것 같습니다. 일례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한국식 밥과 국, 국수, 인절미, 김치, 나물(콩나물 시금치 고사리) 등을 아직도 즐기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국음식은 이들에게서 현지인들에게 전파되기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재외 한인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문화적 다양성의 문제를 생각해볼 지점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5. 이 전시를 통해서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는지?

 

우선 우리들은 구한말에서부터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타율적 이주의 역사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런 것을 학교에서 거의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과 국가의 미래는 장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선조의 일부가 겪었던 시련과 고통의 역사를 제대로 교육시키고, 이렇게 미술 작품을 통해서라도 환기시켜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는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려 봅니다. 해외에 사는 한민족 이산의 후예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 입장 바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으며, 결과적으로는 재외동포에 대해서 정부와 국민이 보다 더 관심을 갖고 그들을 모국과 연결시켜야 하지 않겠나 생각을 해봅니다. 미술평론가 윤범모 선생님은 지정학적 국토가 아닌 문화적 영토를 얘기하기도 합니다.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재단에서 파악하고 있는 한인 동포의 수는 약 743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수는 현재 한국에 들어와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 새로운 이주자로 한국 땅에 들어온 해외 노동자들을 대하는 시각도 역지사지의 태도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사실 기본적인 인류애와 인간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라도 우리 사회가 고민해봐야 할 문제들이 많습니다.

 

 

6. 이번 전시를 마치고 앞으로 계획하는 것은 어떤 전시가 있는지?

 

생각 같아서는 이번 전시에서 다루지 못한 유럽과 북아메리카, 하와이, 중남미 등지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작가들에 대한 전시를 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개최 시기가 언제쯤이 적정한 지를 가늠해보는 것과 함께 예산의 문제가 수반이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관련 전시가 아니라면 아마도 당분간은 경기도와 관련되거나, 제 전공 영역인 조선시대 궁중회화와 민화 관련 전시를 준비해볼 생각입니다.

    

 

 

 

 

 

 

 

7. 20년 넘게 큐레이터 일을 했는데, 큐레이터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나 소양이 어떤 것이 필요한지,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참 많습니다만, 두서없이 나열해보겠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부지런 하라. 자신의 한계를 미리 정하지 마라. 인생에서 불필요한 시간은 하나도 없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긴 호흡으로 세상일을 바라보자. 모든 것을 과정으로 생각하고, 그 과정 속에서 의미와 행복을 발견하라. 주제가 주어지면 입체적으로 사고하고 진지하게 몰입하라. 지적 호기심을 잃지 말라. 꼼꼼하게 기록하라. 늘 메모하고 사진을 찍어라. (특히 사람을 대할 때는) 온 마음과 정성을 다 하라. 사소한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남 탓을 하지마라. ... 조금은 일반적인 인생론 같군요. ... 정말 큐레이터에게 실무적으로 요구되는 몇 마디를 강조해본다면, 첫째, “국어를 잘 하라입니다. 큐레이터는 원고 작성할 일이 많더군요. 국어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할 겁니다. 책 읽기, 일기 쓰기 등등... 둘째, 현장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하고 싶습니다. 답은 늘 현장에 있습니다. 발로 뛰어 찾은 사실과 내용은 반드시 보답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전시를 보는 관람객의 대다수가 누구인가를 생각하면서 전시기획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전문가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지양하고 일반 대중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전시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대중의 이해와 호응이 있어야 우리나라의 미술계와 문화예술계가 좀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감사합니다.




- 글 / 파트론센터 -
기사작성 2018.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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