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창
Kim Gi Chang
1913-2001
1913년 서울에서 출생한 그는 8세에 병으로 청각을 상실해 언어장애를 갖게 되었다. 1930년 이당 김은호의 화숙인 이묵헌(以墨軒)에 들어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1937년부터 1940년까지 4년 연속 특선을 해 추천작가가 되면서 일제강점기 유명 작가로 성장했다. 해방 이후 1950년대에는 동양화가 시대성에 발맞춰 전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김영기와 함께 ‘현대동양화’ 운동을 주창했다. 홍익대와 수도여자사대 교수로 후진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고, 김은호 제자들의 모임인 후소회 회장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1957년에는 당시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비판적이었던 작가들과 함께 새로운 동양화 모색을 주창하며 백양회를 결성하였다.
그의 작품은 일제강점기 김기창의 작품은 김은호의 화풍을 충실하게 수용한 채색인물화였으나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양 입체주의의 영향을 보여주는 실험적인 작품을 제작했다. 1960년대 중반 이후에는 완전한 추상화 단계에 접어들었는데 1967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대표로 미국과 멕시코 등을 시찰한 후 다시 작품에 변화를 보였고, 1970년대의 청록산수 연작과 바보산수, 민화풍의 화조화 등으로 이어졌다. 또한 1973년부터 세종대왕, 김정호, 을지문덕 등 역사적 위인들의 영정 제작을 담당했다.
한편, 김기창은 일제 군국주의에 동조하고, 총독부 문예정책에 협조한 이력으로 인하여,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에 그의 친일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기도 했다.